특허 회피 설계가 후발주자의 생존 전략인 이유
특허가 있다고 해서 완전한 독점권을 보장받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특허가 없다고 해서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죠. 시장에서 성공한 제품에는 반드시 후발주자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들 중 상당수가 특허 침해 없이 유사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허 회피 설계를 통해 후발주자가 어떻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지, 그리고 선발주자는 어떻게 이를 방어해야 하는지 실제 사례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특허는 하나의 길만 막는 것
특허를 쉽게 비유하면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가는 수많은 길 중에서 가장 좋은 길 하나만을 독점하는 것입니다. 1번 길을 특허로 확보했다고 해서 2번, 3번, 4번 길까지 모두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후발주자들은 선발 기술을 철저히 분석한 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우회합니다:
- 구조 변경: 동일한 기능을 다른 구조로 구현
- 재료 대체: 핵심 재료를 다른 소재로 교체
- 방법 개선: 제조 공정이나 작동 원리 변경
- 부분 생략: 특허 핵심 요소 중 일부를 제거하거나 변형
실제 회피 설계 사례
한 스타트업이 개발한 혁신적인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두 가지 음료를 하나의 컵에서 즐길 수 있는 제품이었죠.
선발 제품은 반쪽짜리 컵 두 개가 '바깥쪽 끝부분'에서 결합되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후발 업체는 '안쪽 면과 윗면'에서 결합되는 구조로 설계를 변경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외관과 기능은 거의 동일했지만, 결합 방식의 차이로 인해 특허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후발주자가 유리한 이유
특허 침해 분쟁에서 입증 책임이 다르기 때문에 후발주자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 선발주자: 후발주자가 자신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함
- 후발주자: 자신의 제품이 기존 특허와 다르다는 차이점만 입증하면 됨
더 나아가 후발주자는 선발주자의 특허를 무력화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행기술로 특허 무력화하기
특허의 약점은 공지기술의 존재입니다. 공지기술이란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공개된 기술을 말하며,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됩니다:
- 학술 논문: 대학교 연구실에서 발표한 논문이나 학회 자료
- 학생 과제: 대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발표한 레포트
- 공모전 작품: 탈락한 작품이라도 자료가 남아있으면 해당
- 거절된 특허: 다른 사람이 출원했다가 거절된 특허 출원서
- 해외 자료: 외국에서 공개된 기술 문서나 제품 설명서
선행기술의 파급력
제품화되지 않았더라도 어디선가 기록으로 확인 가능한 공개 자료는 모두 선행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료들을 충분히 확보하면 기존 특허의 상당 부분을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회피 설계의 핵심 요소
특허 회피 설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다음 단계를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 특허 분석: 경쟁사 특허의 청구항을 정확히 분석
- 핵심 기능 파악: 소비자가 원하는 본질적 기능 식별
- 대안 기술 탐색: 동일한 기능을 구현하는 다른 방법 모색
- 선행기술 조사: 기존 특허를 무력화할 수 있는 공지기술 수집
- 법적 검토: 전문가를 통한 침해 가능성 평가
반도체 분야 회피 설계
대전의 한 중소 반도체 회사는 대기업이 보유한 핵심 특허를 우회하기 위해 완전히 다른 제조 공정을 개발했습니다. 기존 방식이 화학적 식각이었다면, 물리적 연마 방식을 채택한 것이죠.
결과적으로 동일한 성능의 제품을 더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특허 침해 문제도 완전히 해결했습니다.
선발주자의 방어 전략
그렇다면 선발주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효과적인 방어 전략이 있습니다:
- 광범위한 특허 출원: 핵심 기술 주변의 다양한 변형 기술까지 특허로 확보
- 연속 특허 전략: 개선된 기술을 지속적으로 특허 출원
- 시장 선점 효과: 특허로 확보한 시간 동안 압도적 시장 지배력 구축
- 브랜드 가치 축적: 기술적 우위를 브랜드 경쟁력으로 전환
가장 중요한 것은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가는 길을 최대한 광범위하게 확보하는 것입니다. 1번 길을 조금이라도 거치지 않고는 갈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범위의 특허를 확보해야 합니다.
기업별 맞춤 전략 수립하기
특허 전략은 기업의 위치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후발주자라면
- 경쟁사 특허 맵핑 및 우회 기술 개발
- 선행기술 데이터베이스 구축
- 차별화된 기능이나 편의성 추가
- 비용 경쟁력 확보를 통한 시장 진입
선발주자라면
- 핵심 기술 중심의 특허 포트폴리오 구축
-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통한 특허 업데이트
- 빠른 시장 점유율 확대
- 브랜드 충성도 및 전환 비용 증대
특허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결국 특허는 사업을 위한 도구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특허를 활용해 시장에서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후발주자든 선발주자든 상관없이, 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지적재산권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성공적인 사업 전략의 핵심입니다.
특허 회피 설계는 단순히 남의 특허를 피하는 소극적 전략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나은 기술과 제품을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혁신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