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고소장 써서 경찰서 가면 되는 거 아니야
피해를 당했을 때 경찰서 민원실에 비치된 샘플로 고소장 작성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고소장을 잘못 쓰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심지어 담당 경찰관에 따라서는 애초에 접수를 해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오히려 고소인이 무고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한 번만 쓸 수 있습니다
한 번 고소하면 같은 사실로는 다시 고소할 수 없습니다. 고소는 처음 할 때 제대로 해야 하며, 수사의 첫 단추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작성해야 합니다.
접수 거부당하는 고소장의 문제점
수사관 입장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안 그래도 바쁘고 일이 많은데 그냥 당신이 알아서 해주세요 식의 고소장을 받으면 어떨까요.
피고소인 특정이 안 되는 경우
수사기관이 처음 할 일은 피고소인을 특정하는 것입니다. 연락처만 있고 주소가 없다면 수사를 시작하기 어렵습니다.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가급적 주소를 쓰는 것이 좋습니다.
당사자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범죄사실을 쓸 때 첫 문장을 읽으면 고소인과 피고소인이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부터 궁금해집니다. 서로 어떻게 알게 됐는지를 먼저 써야 합니다.
주의사항
그렇다고 너무 불필요한 두 사람 간의 히스토리를 쓰면 논점을 흐릴 수 있습니다. 고소 취지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작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증거가 첨부되지 않은 경우
고소는 말로만 하면 안 되고 증거가 필요합니다. 증거가 첨부되면 본문에 증 제1호증 은행거래내역 이런 식으로 인용해야 합니다. 증거 없이 제출하면 수사관이 고소인에게 다시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밖에 없고 시간만 지체됩니다.
고소장 필수 구성요소
고소장은 크게 표지, 인적사항, 고소취지, 범죄사실, 범행경위, 증거자료로 구성됩니다.
고소장 기본 구조
인적사항 작성 요령
고소인은 이름, 주소, 연락처를 정확히 기재하고, 이름 옆에는 주민번호를 씁니다.
피고소인은 이름, 주민번호, 주소, 직업, 연락처를 쓰는데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공란으로 비워둬도 됩니다. 주민등록번호의 경우 생년월일만 안다면 생년월일만 쓰고, 그조차 모르면 성별만 알 수 있게 1 또는 2만 표시해도 됩니다.
범죄사실은 이렇게 쓰세요
범죄사실 부분은 내가 돈을 왜 빌려줬는지 같은 히스토리가 아니라, 피고소인이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만 일정한 규칙 하에 작성합니다.
전제사실 먼저 쓰기
등장인물들의 히스토리를 아주 간략하게 씁니다. 모르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쓰는 것이 핵심입니다.
- 피고소인은 2020년경부터 고소인과 같은 회사를 다니며 알게 된 사이이다
- 고소인은 당시 투자 상품을 찾고 있던 상황이었다
범죄사실은 시간순으로
육하원칙에 맞게 작성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를 명확히 써야 합니다.
작성 예시
피고소인은 2023년 3월 5일 서울 강남구 OO카페에서 고소인을 만나 현재 내가 다니는 회사가 있으며 원금이 보장된다, 월 5%의 수익을 주겠다는 취지로 투자를 적극 권유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소인이 말한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고, 피고소인은 해당 회사에서 근무한 적도 없으며, 고소인으로부터 돈을 받더라도 제대로 사용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
증거 인용이 핵심입니다
범행경위를 쓸 때는 곳곳에 증거를 인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증 제1호증 은행거래내역 참조
- 증 제2호증 카카오톡 대화내역 참조
- 증 제3호증 녹음파일 참조
녹음파일은 반드시 요약하세요
녹음파일이 많은 경우 수사관이 다 듣지 못합니다. 바쁘기도 하고 파일 하나당 한 시간씩 30개를 낸다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시간을 내서 직접 다 듣고 파일명과 함께 간단하게 요약해서 제출하는 것이 좋습니다.
녹음파일 요약 예시
수사유망사항 꼭 쓰세요
이것은 수사관에게 이것만큼은 꼭 해달라고 요청하는 부분입니다.
- 철저한 진실 규명을 위해 피고소인의 재산 상태 확인
- 투자금을 실제 어디에 사용했는지 조사
- 숨긴 재산이 있는지 확인
- 참고인에 대한 조사 실시
- 다른 피해자가 있는지 확인
- 출국 가능성이 있다면 출국금지 조치
이런 내용은 단순히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상 필요한 것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수사 경험이 있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 체크포인트
고소장 말미에는 증거자료 목록을 작성하고, 날짜와 고소인 이름을 쓴 후 서명이나 인감도장을 찍습니다.
혼자 작성이 어렵다면
죄명이나 법조문, 판례 등은 법률 전문가가 아니면 작성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부분은 안 써도 무방하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효과적인 고소장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 도움이 필요한 경우
고소장 작성만큼 중요한 것은 과연 내가 이 사건을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쓸 수 있는 성질의 사건인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고소장을 내고 나면 수사과정이 비공개이기 때문에 수사관이 상대방을 소환했는지, 상대방은 뭐라고 말했는지, 어떤 자료를 제출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수사관과 소통하면서 내 사건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고, 상대방 주장에 어떻게 반박할지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훌륭한 고소장은 경찰에게 밥을 떠먹여주는 고소장입니다. 경찰이 봤을 때 고민하지 않고 이것을 수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고소장이 좋은 고소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