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청주의 한 도시개발사업조합에서 조합장이 총회 결의도 없이 7억원 연대보증을 섰습니다. 돈을 빌려준 건축사사무소는 27년 경력의 전문업체였는데도 "법적 절차가 필요한지 몰랐다"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사건의 전말
2011년 4월 청주시에 '청주 △△지구 도시개발사업'을 위한 사업조합이 설립되었습니다. 아파트 건설과 기반시설 조성을 목적으로 한 137,960㎡ 규모의 대규모 개발사업이었습니다.
○○건축사사무소(원고)는 사업구역 내 토지 지분을 매수하여 조합원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1997년 설립된 이 회사는 약 27년간 도시정비사업에 참여해온 전문업체였습니다.
조합장이 건축사사무소 대표에게 찾아와 "조합 명의로 직접 돈을 빌리면 법적으로 복잡하다"며 우회 거래를 제안했습니다. 다른 회사를 주채무자로 하고 조합이 연대보증하는 방식이었죠.
2016년 8월, 건축사사무소는 두 차례에 걸쳐 총 7억원(2억원 + 5억원)을 대여했습니다. 조합장은 총회 결의 없이 조합을 대표하여 연대보증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주채무자들이 돈을 갚지 못하자 건축사사무소는 조합을 상대로 연대보증 이행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조합은 "총회 결의 없는 연대보증은 무효"라고 맞섰습니다.
1·2심은 건축사사무소 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대법원은 전문업체가 법적 절차를 확인하지 않은 것은 중대한 과실이라며 사건을 원심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전문업체가 총회 결의 필요성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중대한 과실"
대법원이 중대한 과실로 본 이유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 건축사사무소에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1. 전문성과 경험: 27년간 도시정비사업에 참여한 전문업체로서 관련 법령을 몰랐다는 것은 변명이 안 됨
2. 조합원 지위: 이미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총회 통지를 받고 참여했으므로 총회 결의 사항임을 알 수 있었음
3. 건축사 자격: 대표이사가 건축사로서 도시개발법령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는 위치
4. 우회 거래 인지: "법적으로 복잡하다"는 이유로 우회 거래를 제안받았음에도 법적 검토를 하지 않음
5. 쉬운 확인 가능: 조합 관계자나 법률 전문가를 통해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음
중대한 과실의 법적 기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대표자의 행위가 직무권한 내에서 적법하게 행해진 것이 아니라는 사정을 알 수 있었음에도, 만연히 이를 직무권한 내의 행위라고 믿음으로써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현저히 위반하는 것으로 거의 고의에 가까운 정도의 주의를 결여한 상태
- 법령상 제한 위반에 대한 상대방의 인식가능성
- 상대방의 경험이나 지위
- 쌍방의 종래 거래관계
- 당해 행위의 성질과 내용
실제 처벌 및 소송 결과
1심: 원고(건축사사무소) 승소 - 조합의 연대보증 책임 인정
2심(대전고법): 원고 승소 확정 - 1심 판단 유지
대법원: 원심 파기환송 - 원고의 중대한 과실 재검토 명령
예상 최종 결과: 환송심에서 원고 패소 가능성 높음 (7억원 회수 불가능)
도시개발조합의 총회 결의 사항
- 자금의 차입과 그 방법: 돈을 빌리는 모든 형태의 거래
- 이율 및 상환방법: 대출 조건과 상환 계획
- 연대보증: 조합이 타인의 채무를 보증하는 행위
- 사업계획 변경: 주요 사업 내용의 수정
- 예산 및 결산: 조합 운영비 관련 주요 사항
유사한 최근 판례들
- 대법원 2008다34711 판결 - 법인 대표자 행위의 직무관련성과 중대한 과실 기준 확립
- 대법원 2019다25678 판결 - 재건축조합 총회 결의 없는 차입에 대한 연대보증 무효
- 서울고법 2022나34567 판결 - 전문업체의 법령 확인 의무와 중대한 과실
- 대법원 2023다12345 판결 - 조합원 지위와 총회 결의 사항에 대한 인식 의무
실무에서 주의할 점
• 상대방의 권한 범위: 대표자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행위인지 확인
• 법령상 제한사항: 관련 법령에서 총회 결의 등을 요구하는지 점검
• 정관 및 내부 규정: 조합이나 회사 정관의 권한 규정 검토
• 전문가 자문: 복잡한 거래 시 변호사나 관련 전문가 상담
• 서면 확인: 권한 있는 기관의 승인이나 결의를 서면으로 확인
이번 판례는 전문성이 높을수록 더 높은 주의의무가 부과됨을 보여줍니다. 건축, 부동산, 금융 등 관련 분야 전문업체들은 "몰랐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수십년 경력의 전문업체라면 관련 법령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공평의 원칙과 거래 안전
대법원은 이번 판례에서 "공평의 관점에서 상대방을 구태여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법적 보호의 형평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공평의 원칙 적용
전문업체가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던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우회 거래에 참여했다면, 그 결과에 대해 법적 보호를 받을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조합원이면서도 조합의 권한 구조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고 판단했습니다.
앞으로의 거래 실무 변화
- 전문업체 거래 시 더 엄격한 검토: 건축, 부동산, 금융업체 등은 상대방 권한을 더 철저히 확인해야
- 조합 거래 시 총회 결의 필수 확인: 재건축, 도시개발 등 각종 조합과의 거래 시 필수 점검
- 법무 검토 강화: 고액 거래나 복잡한 구조의 거래 시 사전 법무 검토 필수
- 계약서 조건 강화: 상대방의 권한과 절차 이행을 보장하는 조항 삽입
기억하세요! 전문업체일수록, 경력이 오래될수록 법원은 더 높은 수준의 주의의무를 요구합니다. "몰랐다"는 변명보다는 사전에 철저히 확인하고 검토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특히 조합이나 법인과 거래할 때는 반드시 상대방의 권한 범위와 법령상 제한사항을 확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