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A씨가 B씨에게 3억원을 빌려주면서 담보로 부동산을 받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B씨가 그 부동산을 누나와 자형에게 팔아버렸습니다. 과연 이것이 배임죄일까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내린 충격적인 답은...

사건의 전말

1
3억원 차용과 대물변제 약속

피고인이 채권자에게 3억원을 차용하면서, 만약 갚지 못할 경우 어머니로부터 상속받을 부동산으로 변제하기로 약속했습니다.

2
부동산 소유권 이전

피고인이 어머니의 유증을 받아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이전등기를 자신 명의로 마쳤습니다. 이제 담보물이 피고인 소유가 되었습니다.

3
부동산 매도

그런데 피고인이 누나와 자형에게 이 부동산을 매도해버렸습니다. 채권자와의 약속을 어기고 담보물을 처분한 것입니다.

4
배임죄로 기소

채권자가 고발하여 피고인이 1억 8천만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채권자에게 동액의 손해를 입혔다며 배임죄로 기소되었습니다.

5
1, 2심 유죄 판결

1심과 2심 모두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여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기존 판례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6
대법원 전원합의체 파기

그런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기존 판례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14년간 이어져온 판례의 대전환이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최종 판단 (9:4)

"대물변제예약 위반은 배임죄가 아니다"

다수의견 vs 반대의견의 치열한 대립

이 판결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대법관들 사이의 극명한 의견 대립이었습니다:

다수의견 (9명) - 배임죄 부정

• 핵심 논리: 대물변제예약은 채무자의 "자기 사무"이지 "타인의 사무"가 아니다

• 담보의 성격: 궁극적 목적은 금전채무 이행 확보이며, 부동산 이전은 부수적

• 의무의 성격: 언제든지 금전으로 변제하여 부동산 이전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 피해 회복: 채권자는 금전적 손해배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반대의견 (4명) - 배임죄 인정해야

• 핵심 논리: 부동산 매매와 동일한 신임관계가 존재한다

• 판례 일관성: 부동산 이중매매는 배임죄인데 대물변제만 예외일 이유가 없다

• 신뢰 보호: 담보물의 담보가치에 대한 신뢰도 보호받아야 할 법익

• 현실적 필요: 담보계약 파기 행위도 형사처벌이 필요하다

배임죄의 핵심 요건

이 판례를 이해하려면 먼저 배임죄의 구성요건을 알아야 합니다:

핵심 쟁점: "타인의 사무" vs "자기의 사무"

이 사건의 핵심은 대물변제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타인의 사무"인지 "자기의 사무"인지 여부였습니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만 범할 수 있는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기존 판례의 흐름

2000년부터 2014년까지 대법원은 일관되게 대물변제예약 위반을 배임죄로 처벌해왔습니다:

폐기된 기존 판례 (대법원 2000도4293)

• 기본 입장: 대물변제예약도 부동산 매매와 동일하게 등기협력의무 존재

• 신임관계: 채권자의 재산보전에 협력할 의무가 신임관계의 본질

• 배임죄 인정: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면 배임죄 성립

• 처벌 수위: 통상 징역 1~2년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

다수의견의 상세한 논리

왜 "자기의 사무"인가
  • 조건부 의무: 예약완결권 행사 후에야 의무 발생
  • 금전 변제 가능: 언제든지 돈으로 갚아서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음
  • 담보물의 성격: 특정물 자체가 아닌 담보가치가 중요
  • 궁극적 목적: 부동산 이전이 아닌 금전채무 이행 확보
  • 피해 회복: 금전 손해배상으로 목적 달성 가능

반대의견의 강력한 반박

반대의견이 지적한 문제점들

• 판례 일관성 훼손: 부동산 이중매매와 차별할 합리적 근거 없음

• 논리적 모순: 매매는 배임죄, 담보는 무죄인 이유 불분명

• 현실과 괴리: 담보계약도 독자적 신임관계 형성

• 피해자 보호 후퇴: 담보물 신뢰 보호 필요성 무시

반대의견의 극단적 예시

반대의견은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아파트 시행자가 일부는 분양계약, 일부는 공사비 담보로 대물변제예약을 한 후 전체를 제3자에게 처분했다면, 분양자에게는 배임죄, 시공자에게는 무죄가 된다. 과연 합리적인가?"

실무에 미친 영향

여전히 배임죄가 되는 경우들

배임죄로 처벌받는 부동산 관련 행위들
  • 이중매매: 중도금 받고 다른 사람에게 재매도
  • 이중근저당: 근저당 설정 약속 후 다른 곳에 설정
  • 이중전세: 전세 계약 후 다른 사람과 재계약
  • 위임배임: 부동산 처분 위임받고 임의 처분
  • 업무상배임: 회사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

민사상 구제 방법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서 피해자가 완전히 무방비 상태는 아닙니다:

채권자의 구제 수단
  • 손해배상청구: 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민법 제390조)
  • 사해행위 취소: 채무자의 재산 처분 행위 취소 (민법 제406조)
  • 부당이득 반환: 처분으로 얻은 이익의 반환 요구
  • 강제집행: 채무자의 다른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

실무상 주의사항

채권자가 주의해야 할 점

• 담보 설정 방법: 대물변제예약보다는 근저당권 설정 검토

• 계약서 작성: 위반시 손해배상 조항 명확히 기재

• 정기 점검: 담보물의 상태와 소유권 변동 주기적 확인

• 신속 대응: 위반 징후 발견시 즉시 민사소송 준비

채무자가 주의해야 할 점

• 여전히 민사책임: 형사처벌은 없어도 손해배상 책임 존재

• 신용도 하락: 계약 위반으로 인한 신용등급 하락 위험

• 기타 범죄 위험: 사기죄나 다른 범죄 성립 가능성

이 판례의 한계

모든 대물변제예약이 무죄는 아니다

이 판결은 "채권 담보 목적"의 대물변제예약에만 적용됩니다. 만약 기존 채무를 소멸시키고 새로운 물건채무로 대체하는 성격이라면 여전히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전망

이 판례가 남긴 교훈

형법의 엄격한 해석

이 판례는 형법 해석의 엄격성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행위라도 형법의 구성요건에 정확히 해당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하지만 4명의 대법관이 강력히 반대한 만큼, 이 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습니다. 특히 피해자 보호와 거래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앞으로도 계속 논의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론 - "대물변제예약 위반은 더